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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공간/→ 공공이 : 문화의장

[서울/강남구/대치동] 빅아이즈 BIG EYES 전시회


삼성역 부근 마이아트 뮤지엄 알폰스 무하 전시가 알렸던 곳에서 이번엔 빅아이즈 전시를 했다.

친근한 길이다 싶어서 더욱 반가웠던 빅아이즈 전시!

 

일단 검색을 통해서 빅아이즈를 누가 그렸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가렛 킨 (Margaret D. H. Keane)

1927년 테네시 내슈빌에서 태어난 마가렛 킨 2살 때 한쪽의 청력을 잃게 되면서 사람들의 눈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눈을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죠 그래서 유난히 큰 눈을 강조해서 그린 그림으로 1950-60대 미술계에 큰 이슈를 불러 일으킨 미국화가입니다. 당시 보수적이였던 미국 사회에서 여성작가로서 이름을 내세우지 못하고 자신의 작품을 남편이름으로 내걸었던 그녀는 여권 신장과 키치 문화를 확산을 설명하는데 중요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빅아이즈 마가렛 킨의 작품에선 빼놓을 수 없고 그녀의 그림임을 이야기 할 때 따라 다니는 그녀의 브랜드인 큰 눈

 

마가렛은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월터 킨과 재혼을 합니다. 미국에서 그림을 팔려면 여성작가보단 남성작가가 유리 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월터라는 이름으로 작품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그녀의 이름도 함께 잃었습니다. 그리고 부를 얻었지만 자신의 딸에게 조차도 말하지 못한 채 하루 16시간동안 그림만 그리며 살았습니다. 그녀가 그린 크고 슬푼 눈을 가진 아이들과 동물 그림을 전쟁이 지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시점엔 엄청난 호응을 얻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부를 얻기 위함으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포스터, 엽서등으로 판매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지요 그러면서 주류에선 멀어졌지만 대중미술과 키치 문화의 시작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에술은 특정 계급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쉽게 누구나 접근할 수 있나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선 엄청난 존재감인 빅아이즈입니다.



전시회 장에서 볼 수 있는 투명 보호막이 둘러 쌓인 그림 마가렛 킨이 특별히 주의를 부탁한 작품 중 하나라고 합니다.

왜 이 그림을 그녀는 그토록 아꼈을까요?

 

전시장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이 그림의 정체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던 시기에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요.. 그래서 다른 스타일의 그림으로 그녀를 표현하고자

했던 그림이 바로 위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던 작품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보호되고 있던 그림 증거물 224

 

그녀 자신을 속이고  아이들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에 드디어 월터와 이혼을 시도 합니다. 그리고 한 라디오를 통해서 빅아이즈의 원작자가 자신임을 밝히며 긴 법정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판사가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동시에 빅아이즈를 그리도록 제안 했고 53분만에 빅아이즈를 완성한 마가렛은 증거물 #224라고 그림이름을 지으며 긴 싸움에서 이기며 그녀 자신을 되 찾았습니다. 



이름을 찾은 그녀 마가렛 킨 

 

하와이로 이주한 후 1990년대 이후 작품에선 그녀는 밝고 다양한 색채와 행복한 얼굴들을 화폭에 담습니다. 어린이들과 동물, 동화같은 화풍도 그려 냅니다. 
그녀는 아직도 현존하는 작가입니다. 그녀는 아직도 빅아이즈를 그녀만의 스타일로 담습니다.



마가렛 킨은 현재도 그림을 그립니다. 

 

90세가 넘는 그녀는 현존하는 가장 아름답고 멋진 눈을 그려내는 화가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그녀의 화풍은 팀버튼이라는 유명한 감독에 의해서 그녀의 삶을 영화"빅아이즈"로 재조명했고

문화 전반에 걸쳐 그녀의 화풍이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빅아이즈 전시를 다녀 오고 나서 그녀가 더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길 희망해 보았습니다.

그녀가 더 많이 행복하길 바라보았습니다.